■본문 중에서
그가 보기에 여자는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뜨릴 것처럼 묘하게 슬픈 표정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금방이라도 환하게 미소를 지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가?
그는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며 그림 속 여자를 빤히 응시했다. 여자는 애써 수줍음을 감추는 것처럼 그의 시선을 은근히 피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이 곁에 있어도 오직 한 사람만이 그립다? 그대 생각이 간절하다. 그대 생각이… 간절하다?
캐드먼은 그림 속에 새겨진 글귀가 의미한다는 내용을 몇 번이나 소리 내지 않고 되새겼다. 한순간 다시 한 번 그림 속 여자와 눈길을 마주한 캐드먼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림 속 여자는 천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이런 식으로 마주하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의미심장한 문구로 그에게 말을 거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당신, 정말 잘도 내 마음을 읽어내는군!
* * *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왈칵 뜨거운 눈물이 넘쳐흘러 그녀의 얼굴을 적셨다.
그는 손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는 대신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손은 저절로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서 자신의 손안에 감쌌다. 그녀를 마주 대할 때마다 그의 심장이, 그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그의 손은 뜨거웠다. 그는 작고 부드럽고 차가운 그녀의 손을 감싸 안고 오랫동안 가슴 깊이 담아두었던 말을 풀어놓았다.
“그렇게… 관대하게 나를 용서한 것처럼 당신 스스로도 결박을 풀어야지.”
두 사람만 깨어있는 그 어둠의 사적인 공간에서 그의 말은 너무나 큰 울림으로 그녀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작품소개
전생의 사랑이 이루어질까, 전생에 못 이룬 사랑이 이루어질까.
캐드먼이 가진 <미인도>는 신이일까, 아니면 정하일까.
신이의 사랑, 정하의 애증, 무강의 분노, 창해의 복수!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오랜 시간 고심하던 이진현 작가가 드디어 이야기를 끝냈다. 1부가 민희의 시선으로 전생의 기억에 다가갔다면 2부는 캐드먼의 시각으로 전생의 사랑과 현생의 사랑을 풀어낸다.
매일 박물관의 금가락지를 바라보며 현생과 전생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민희의 가슴 아픈 사랑, 우연히 얻은 <미인도>를 통해 전생을 각성하며 폭풍같이 일어나는 캐드먼의 열정적인 사랑, 민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며 배려해주는 영현의 부드러운 사랑, 생기 있고 발랄하면서도 캐드먼에게 끌리면서도 묘하게 확신을 갖지 못하는 아라벨라의 상큼한 사랑. 그들의 이야기가 이진현 작가의 섬세한 감정 묘사와 유려한 문체와 만나 어우러지고 펼쳐지면서 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뿜어내고 있다.
잊혀진 고대 백제의 이야기를 꺼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재해석하여 펼쳐지는 전생의 이야기와 해박한 박물관 및 고고학 관련 지식은 글을 읽는 내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
■작가소개
이진현
이진현은 모년 4월 4일(음) 태어난 A형 황소자리.
가끔 몰아서 영화보기, 서점 구경가기, 괭이와 놀기를 좋아하며,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에 관심이 많다.
출간한 소설로는 종이책으로 「해적의 여자」, 「기억의 저편」, 「정혼」,
전자책으로 「그대 그리고 나」,「바리공주」가 있고,「고양이왕자」,
그리고「BNB 프로젝트」를 출간준비중이다.
소통을 위한 작은 창을 이글루스에 열어두고 있다.(hyang2.egloos.com)
■등장인물
•애드리언 캐드먼 : 영국인으로 귀족태생의 기업가. 한국어에 능통하며 동양미술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연히 얻은 <미인도>로 인해 전생의 사랑을 찾아 헤맨다.
•채영현 : 문화부 기자. 우연히 박물관에서 민희를 만난 후 그녀의 전생을 이끌어내며 곁에서 돕는 존재. 전생이 현생의 삶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민희 : 역사전공으로 박물관 큐레이터. 고등학생 시절 경주박물관에서 본 환두대도를 본 충격으로 전생에 대한 각성을 시작했다. 현생의 인연과 전생의 사랑 사이에 갈등한다.
•아라벨라 이시자카 : 소더비 경매회사 직원. 영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나서 영국에서 자랐다. 캐드먼이 구입한 미인도 그림을 전달하는 인턴사원으로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와 만나 인연을 이어간다.
•부여무강(창) : 백제 27대 왕. 차비의 가문인 목씨가와 손을 잡아 귀족들을 제압했으나 후에는 가차 없이 살육하여 차비 정하와 그 오라비 창해의 원망을 산다.
•연신이 : 무강의 원비. 오직 무강에 대한 사랑만으로 세상을 산다.
•사유 : 사비지역 호족세력의 일원. 지식와 무를 겸비하여 성왕의 사랑을 받음. 신이를 신라에서 탈출시키다 적들과 싸우던 중 전사하여 신이의 마음 깊이 남게 된다.
•목정하 : 무강의 차비. 오빠들과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나 훗날 무강의 진심을 알고 깊은 상처를 받는다. 다시 태어나도 그를 쳐다보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후회한다.
•목창해 : 정하의 오라비로 목씨가의 4남. 정하로 인해 무강과 악연을 맺게 된다. 훗날 무강이 자신의 가문을 도륙하자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왕실을 압박, 무강의 존재를 역사에서 지운다.
•부여명 : 무강의 동생. 정하와 혼인할 뻔하였으나 훗날 정하가 그에게서 버림받고 고통스러워하자 지켜보며 안타까워한다. 역사에 기록되기로 27대 위덕왕.
■줄거리
우연히 얻은 <미인도>를 통해 전생의 삶을 각성하기 시작한 캐드먼은 전생의 연인을 찾고자 한다. <미인도>를 얻게 되던 날 아라벨라를 만나고 기묘한 감정을 느끼며 전생의 연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확신을 갖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한국에서 백제의 왕릉급 무덤 발견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어떤 예감에 사로잡힌 캐드먼은 무덤 발굴의 후원자로서 한국으로 날아가게 되고, 한국 방문 첫날 민희를 만나며 전신을 옥죄어 오는 충격을 받는다. 아라벨라와 달리 그녀가 자신이 찾던 전생의 연인임을 확신하게 된 캐드먼은 그녀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를 고대하지만 민희는 캐드먼을 두려워하고 그녀의 곁에는 영현이 자리하고 있자 분노하게 되는데….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사는데 있어서 의미 없는 일입니다. 캐드먼 씨는 원하는 사람을 찾고자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원치 않는 인연도 함께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원하는 이를 만나고 그를 각성시키면 원치 않던 인연을 자극해 그의 각성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